전산학도 이야기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봣을 것이다. 아마도 죽음에 관한 공포나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과거든 현재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그외 세계 어디에서든 간에 누구나 가졌던 감정이다. 그런 죽음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상상은, 각 나라의 전래 동화, 신화, 전설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죽을 때가 되면 저승사자가 와서 넋을 가져간다던가, 이상한 향이 나는 꽃밭에 강건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인다던가, 터널에서 빛을 따라간다던가 말이다.

그 후에
국내도서>소설
저자 : 기욤 뮈소(Guillaume Musso) / 전미연역
출판 : 밝은세상 2010.06.03
상세보기


  '그 후에...'는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에 갑작쓰럽게 휩싸인 파크 애비뉴의 유능한 변호사 '네이선 델 아미코'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네이선은 자신이 맡아온 소송에서 늘 이기기만 한, 말 그대로 잘 나가는 변호사이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자신을 치료해준 '가렌 굿리치'라는 의사를 만나고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다소 어처구니가 없지만, 만약 당신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굿리치라는 의사가 와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진짜 죽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한다면, 당신도 죽음을 대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굿리치를 만난 뒤 네이선 자신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가지게 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네이선을 보며 난 내 주변사람들, 특히 지금은 떠나버려 영영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의 죽음을 준비하듯,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타인의 죽음을 같이 준비해 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내 주변사람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못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할머니이시다. 난 할머니께서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때의 나는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함께 해드리지 못하였다. 굳이 임종을 앞둬야만 뭔가를 해드렸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다 못해 평소에 할머니께서 해 주시는 옛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께서 살아왔던 그 인생의 흔적들을 들어드리는 것 만으로도 할머니께서는 행복해 하셨을텐데.

  비단 나만 후회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는게 하나 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회되는 일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과 관련된 일이라면, 특별히 더 후회되곤 한다. 작가는 그런 후회스러운 감정을 '메신저'라고 자처하는 가렌 굿리치를 통해 해소시켜 준다. 메신저는 한국적인(?) 표현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보는 능력이다. 굿리치는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을 활용해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고,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거나 걱정할 만한 일들을 해소시켜주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굿리치는 '그가 죽기 전에 이 말만 해줄 수 있었더라면..', 마지막을 함께 해줄 수 있었더라면.', '단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었더라면'과 같은 누구나 가질법한 후회들을 가지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면서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캔디스와 그녀 아버지와의 관계, 네이선과 딸 보니, 장인, 장모, 그 외 많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내 말로리와의 관계가 회복돼 가는 것을 보면서 내심 이 세상에 정말 메신저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수 많은 메신저들이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덜어주며 동시에 우리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짐을 덜어준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행복해 질 것인가! 그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온화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온화함에 더하여 굿리치가 어떻게 메신저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메신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지까지 모두 생각해보게 할 암시를 주었다.

  우리는 분명 '메신저의 능력' 같은 건 갖고있지 않다. 설령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을 굿리치만큼 잘 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작가는 네이선을 통해 죽음이 임박한 사람도 메신저의 능력이 없이 틀어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알려주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사랑하고, 서로 아껴준다면 곧 죽는걸 알고 있더라도 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까지 말이다.

  당신이 만약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이 올 날을 미리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당연히 그를 열렬히 사랑해주지 않을까? 진심을 다해 열렬히 사랑해 준다면, 우리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위디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