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도 이야기


    요새 TV드라마를 보면, 나같이 평범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사회 초년생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걱정이 앞선다. TV에선 욕심 많은 대기업 회장 때문에 평범한 소시민 가장이 거리로 내몰리기도 하고, 잘 지내던 아내가 어느날 재벌 2세랑 눈이 맞아서 떠나버리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이면 다행이다. 어떤 대학생들은 고액의 등록금, 적은 초봉, 그리고 학자금 대출 때문에 사회에 나가자마자 매일 뼈빠지게 일해 빚이나 갚는 신세가 되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속 주인공들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늘 냉철한 사고와 말도 안되는 우연이 함께 한다. 그리고 거기에 귀한 인연(?)과, 기적적이지만 연속된 사건들을 계기로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곤 한다. 아마도 이런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데이' 역시 첫 시작은 TV드라마처럼 우리의 일상을 뒤엎을 만한 커다란 변화로 시작한다. '오 해피데이'는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6개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부의 별거, 잘 다녀왔던 멀쩡한 회사의 도산, 외간 남자에게 흑심을 품는 아내 등, 요새 TV드라마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서 볼 법한 방법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행복으로 바꿔 나간다.

오 해피 데이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오쿠다 히데오(Hideo Okuda) / 김난주역
출판 : 도서출판재인 200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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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맞는 행복, 몇몇 사람들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오 해피데이'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다. '그레이푸르트 괴물' 이라는 이야기는 40대에 가까운 아내가 20대 후반의 영업 사원에게 갖는 불순한 마음을 그린 이야기이다. 어쩌면 요새 TV 드라마에서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서 이젠 신물이 나는 소재다. 여기서 보통의 TV드라마처럼 진행되면 연하남이 정신줄을 놨는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편과 사는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여자는 '이거다!' 싶어 바로 집을 뛰쳐나가 버린다. 반면 오쿠다 히데오가 그리는 남녀는 여자도 남편을 의식해 '꿈에서만' 불륜을 하고, 연하남도 연상의 여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이 아줌마 왜이래?' 와 같은 식의 반응을 보인다.

     TV드라마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바라고 있는 모습 같다. 내일 당장 회사가 도산되더라도, 10억 가까운 돈이 수중에 들어와도,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뛰쳐 나오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누렸던 행복을 깨뜨리지 않고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정말로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분명 TV드라마에서 나오는 기적같은 우연(?)이 내게는 거의 바랄 수 없는 행운이란 걸 알고 있었다. 아마 TV드라마를 같이 본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극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는 평범하고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행복이 있음을 감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를 잘 간파하고 작중의 주인공들 만큼이나 평범한 우리에게 진짜 자신에게 맞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군대에 온 뒤로 TV 드라마를, 사실 예전에도 거의 안보긴 했지만 그때보다도 더 안보고 있다. 심지어 생활관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의도적으로 피해서라도 안 본다. 왠지 내 인생과 내 가치관이 드라마에 침식되는 것 같아서이다. 아마 일상으로부터의 행복도 그 가치관에 포함되었던 것 같다. 지금 나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오늘에 만족하는것, 바로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드라마를 보며 내게 일어나지 않을 행복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더 행복할 것이다.
Posted by 위디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