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도 이야기



군대에서 읽고 군인 독후감 대회에 냈던글임. 수상은 못함 ㅇㅇ..


  나는 군대에 오기 전, 군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수 많은 전역자들로부터 들은 군대란 곳은 '한번 갔다오면 괜찮으나 두번 가긴 싫은 곳', 그리고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기 싫은 곳'으로 표현되었다. 그런 인식이 겹치고 겹쳐져서인지 나는 군복무에 대해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갔다 오는 것은 여전히 시간낭비 같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에 오기 전,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해서 병역특례업체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도 갖췄고,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해 내가 원하는 일도 하고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원해서 군대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의 설득이었다. 부모님께선 큰 사람이 되려면 먼저 군대를 갔다와야 하며,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만이 세상에 떳떳하게 나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난 어째서 군복무를 마쳐야만 세상에 떳떳하게 나갈 수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부모님께선 국방의 의무를 마치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만 말씀해 주셨다.

  솔직히 말해서 난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정의라는 말에 대해 들은 것은 단지 거대 로봇이나 쫄쫄이를 입은 남자(?)들이 나오는 전대물(흔히 xx레인저, oo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TV시리즈)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TV시리즈에서는 대개 착하고 속임수 따위는 모르는 정직한 주인공들과 악하고 치사하며 늘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리려하는 나쁜 외계인들이나 괴물들이 적으로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런 적들을 물리치는 주인공들은 늘 비슷한 레퍼토리의 말을 함께 하면서 적을 물리쳤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따위의 말들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정의'로는 내가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치는 것이 왜 정의로운 일인지 알게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마 군복무가 단순히 나쁜 외계인들이나 괴물들을 물리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모두가 그런일을 해야한다는것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무엇이 군 복무를 마치는 것을 영예롭게 만들고 정의로운 일로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왜 병역의 의무를 기피한 국회의원의 아들이나 부잣집아들들을 불의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는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군 복무가 정의로운 일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정의에 대해서 다양한 철학적 관점과 도덕과 정의의 정의에 대한 관점의 서사적인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그리고 나처럼 철학과 같이 어려운 주제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도덕적 관점들이 상충되는 수많은 사건과 판례들을 이용해서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도덕과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도덕,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저자가 풀어 쓴 정의에 대한 관점들을 통해 내가 진정 군복무를 통해 어떤 것을 이루어 내는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국내도서>인문
저자 :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 이창신역
출판 : 김영사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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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먼저, 왜 군대에 젊은 시절의 1년 9개월이라는, 미래를 설계하는데 있어 비교적 중요한 시간을 보내야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그 1년 9개월을 군대에 가는 대신 더 많이 일해서 그 돈으로 군인을 위한 세금을 내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래 군인ㅇ르 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좋을 것이고, 나는 젊을 때 돈을 벌 기회와 많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닌가?
  마이클 샌델은 이런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알려주었다. 나의 재능은 결코 내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내가 가진 능력을 다른사람보다 우대해 주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재능을 이용해 다른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은 것 역시 순전히 행운이고, 내게는 그런 행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각자 다른 보상의 차이를 내 재능을 이용해 보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또 다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물질적, 사회적 보상을 완벽하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그리고 공직과 영광이 동등하게 부여되는 사회라고 선전하는 공산주의 사회와, 그 이상을 따른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의 처참한 종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가 직접 보상해 주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재능을 활용하여 많은 돈을 벌어 그것을 내 대신 군 생활을 해줄 사람에게 주는 것은 보상이 아닌 것인가?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처럼 자원군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어떤 제도가 낫다는 단정적인 결론 대신 최근 모집된 미군의 25%이상이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자료와, 50년전과 현재의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자의 군 입대 비율이 약 75배 가량 차이난다는 점을 지적하여 자원군이 반드시 자원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덧붙여, 한국전쟁 참전자이자, 미국의 민주당 의원인 찰스 랭글은 '만약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의 자녀가 참전에 따른 부담을 나눠야 했다면, 전쟁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으리라고 믿는다'고 하였다. 만약 내가 태어난 가정 환경과 교육환경의 차이로 인해 이루고 싶은 꿈을 펼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들어와야 했다면, 그리고 누군가는 군대에 들어가는 대신 학업을 계속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모습을 본다면 난 결코 자원군 제도가 정의롭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군복무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내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일종의 행운이며, 그러한 행운을 가져다 준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에 보상하고, 나의 아들 세대에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는 분명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사회의 일부가 됨으로써 반드시 지고가야할 연대의식이며, 합의가 아닌 서사적인 존재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연대 의무인 것이다. 이런 연대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내가 국가라는 커다란 사회에 속해 있음으로서 받은 행운과 우연히 이 시대에 태어남으로써 받은 보상을 받기만 하고 그 행운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한 그것은 그 행운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불의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의로운 사람의 관점에서 우리는 국방의 의무를 짐으로써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받은 행운에 값을 치르고, 미래의 우리 아들과 손자세대의 행운을 포상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대의무를 지고 나갈 사람은 분명 외국인이나 자본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 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군복무를 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보에 아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됨으로써 나는, 그리고 같은시기에 군복무를 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은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로부터, 그리고 현재 이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장 자크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인은 모든 일을 자기손으로 하지, 돈을 들여 하지 않는다. 돈으로 의무를 면제받기는 커녕 돈을 들여서라도 의무를 직접 이행할 특권을 얻으려 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로운 국가, 대한민국에 사는 것 만으로도 이러한 의무를 직접 이행할 특권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는 떳떳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마이클 샌델은 그의 책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음으로써 군 복무의 의의를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나의 입대 전에 말씀해 주셨던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람이 무엇인지를 도덕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내 친구들 중 누군가 군 복무 대신 전문연구요원, 공익근무요원, 방위산업체 근무 등 대체복무를 고려하고 있다면, 난 그에게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다. 군복무는 너를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이다.




  이 글의 인용구는 모두 '정의란 무엇인가(2009, 마이클샌델, 김영사)'에서 인용하였음을 알립니다.

Ps. 정작 나는 현역입대 조금 후회중.
Posted by 위디안